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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vs 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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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410월 4일, 미스라타 북측의 방어진지가 무너지며 웨스타시아군의 제14보병사단 좌익이 붕괴되었다. 남아 있던 기갑대대는 지원 없이 고립되었고, 마베라군 선봉부대는 이틀 만에 48킬로미터를 전진, 아크로마와 미스타라를 연결하는 교차 물류허브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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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체르드군은 이 돌파구를 확대하기 위해 '''‘코브라 라인’'''으로 명명된 중부 능선 방어선을 포위해 들어갔고, 이에 맞선 웨스타시아군은 퇴각과 반격을 병행하는 지연전술을 펼쳤으나 지형의 한계로 인해 효과는 미미했다. 웨스타시아 측이 진지 철수를 명령한 것은 10월 7일. 그러나 이 결정은 이미 너무 늦었다.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은 미스라타 부 비행장과 유류 저장소, 중형 철도 분기점을 포획했으며, 전선은 단 1주일 만에 남동방향으로 80킬로미터 이상 전진했다.
76체르드군은 이 돌파구를 확대하기 위해 '''‘코브라 라인’'''으로 명명된 중부 능선 방어선을 포위해 들어갔고, 이에 맞선 웨스타시아군은 퇴각과 반격을 병행하는 지연전술을 펼쳤으나 지형의 한계로 인해 효과는 미미했다. 웨스타시아 측이 진지 철수를 명령한 것은 10월 7일. 그러나 이 결정은 이미 너무 늦었다. 마베라–체르드 연합군은 솔로몬 부 비행장과 유류 저장소, 중형 철도 분기점을 포획했으며, 전선은 단 1주일 만에 남동방향으로 80킬로미터 이상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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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8마레트 라인 돌파는 전통적인 교착전 양상을 뒤엎은 전격적 기갑 작전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마베라군은 전차 손실 140여 대, 전사자 약 3,200명을 감수했지만, 웨스타시아군은 동부 방어망 전반이 붕괴되며 3개 여단이 후퇴, 2개 기갑중대가 포위 및 항복, 1개 야전사령부가 해체되는 전선 붕괴 사태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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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89자세한건 [[라이넬 항 탈출]]문서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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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1=== 발악: 은색작전 ===
921984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92198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전황은 이미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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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4혹한기의 추위와 폭설로 다시 공세는 둔화됐지만, 이미 전쟁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안봐도 뻔한 것이었다. 가다메스를 가로막아 상륙군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려 했던 이드리스 작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고, 그렇게 마베라 중부를 성공적으로 재패한 마베라 7,8군과 체르드 6군은 10월 29일 바르디야를 집중 공략해 한랜드군의 허리를 끊어놓았다. 몇달 전의 상황과 반대로 마베라군의 아게다비아 강북 포위망이 성공적으로 구축됨으로써, 보급선이 전멸한 최전방의 한랜드군들은 마레트 라인이 돌파된 이후부터 다음 해까지 말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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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683년 11월 11일. 트리넬이 함락되었다. 15척의 수송선이 함락되어가는 트리넬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알파 집단군도 마베라땅을 떠났다. 왕궁에 꽂혀있던 백십자기는 다시 끌여내려져 불태워졌고, 국왕은 이날 열린 수도탈환 기념연설에서 승리가 눈앞에 있음을 국민들에게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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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4주간의 공성전 끝에 베이다의 맘무트 요새에 갇혀있던 한랜드 4군이 항복했다. 웨스타시아 공세의 최후의 교두보이자 한랜드군 공세의 상징이었던 그곳이 함락되면서, 이제 한랜드군에는 가망이 없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웨스타시아군 초반 우세의 핵심이었던 369고지에도 왕관박힌 깃발이 올라가면서 에스타뉴 서부 & 동부 회랑이 모조리 함락. 전쟁 전 국경선이 거진 1년만에 복원되었다. 새해와 함께 이제 마베라군의 숙제는 영토 탈환이 아닌, 영토 확장이 되었다.
9811월 21일에는 4주간의 공성전 끝에 베이다의 맘무트 요새에 갇혀있던 한랜드 4군이 항복했다. 웨스타시아 공세의 최후의 교두보이자 한랜드군 공세의 상징이었던 그곳이 함락되면서, 이제 한랜드군에는 가망이 없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웨스타시아군 초반 우세의 핵심이었던 369고지에도 왕관박힌 깃발이 올라가면서 에스타뉴 서부 & 동부 회랑이 모조리 함락. 전쟁 전 국경선이 거진 1년만에 복원되었다. 새해와 함께 이제 마베라군의 숙제는 영토 탈환이 아닌, 영토 확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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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0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웨스타시아군 총사령부는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다. 특히 딮스마르크 + 수상함대 대부분의 침몰이슈로 해상 봉쇄의 주도권이 마체련합군에 넘어가버려 웨스터발트의 거리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들끓었고 배급제가 실시되는 막장 상황이 2달째 반복됐다. 게다가 이 시점부터 앨빈 대통령의 정신병이 악화되기 시작해 대통령궁에서는 히스테리와 괴성이 하루도 끊이지 않았다.
101101이제 그들은 단순 울고만 있으면 안되는 처지였다. 그들은 무언가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 항의할 수 없을만큼 결정적으로 이 모오든 상황을 뒤집을 '비장의 카드'를 내야 했다. 그리고 웨스타시아 총사령부가 선택한 그 카드는「은색작전(Operation Silver)」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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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3==== ???: 아니 여기로 가면 되잖아 ====
104쯤에서 마베라, 웨스타시아 국민들뿐만 아니라 이 전쟁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무언가 한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04개전 1년 다되가는 이쯤에서 마베라, 웨스타시아 국민들뿐만 아니라 이 전쟁을 지켜보던 대부분의 세계인들은 무언가 한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것은 개전 초부터 있었지만, 무언가 다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니라는양 넘어간 것에 대한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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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이 의문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베라와 웨스타시아의 전선 형태를 다시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전쟁 같은 평범한 남-북간의 전선배치와는 달리 마베라-웨스타시아간의 국경지대에는 높이로만 세계 10위권 안에드는 거대하고 험준한 몬타나 산맥이 동서로 크게 자리잡고 있어 중부로의 타격이 사실상 불가.[* 공군으로의 타격은 한랜드군쪽에서도 몇번 시도해본적이 있었지만, 마베라군이 이를 예측하고 산맥 너머에 미리 어마어마한 방공망을 건설해놨었기에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오직 서쪽 끝의 에스타뉴 회랑 혹은 해안지대, 동쪽 끝의 토브룩 회랑으로만 타격이 가능한 매우 괴이한 전선배치를 자랑했다. 때문에 웨스타시아 측에서 마베라를 타격 가능한 루트는 실상 두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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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하지만 요상하게도 웨스타시아군은 토브룩 회랑을 돌같이 보고, 마베라의 거의 모든 군사적 자원이 모여있는 서부전선에만 병력을 집중해 ㄷ자 모양의 전선배치를 만들었다. 마테르전의 괴이한 전선배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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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10"왜 동쪽은 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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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하지만 웨스타시아 도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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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문제의 토브룩 회랑은 크고 알흠다운 몬타나 산맥을 끼고있는 지형으로, 깎아지른 절벽 사이사이에 마베라가 건설해둔 지하 공군기지 열댓개가 포진해있는 악마같은 방공망을 자랑한다.[* 대부분 옛 전쟁 당시 한랜드로 패주하던 독일군이 동쪽으로 쳐들어오던 연합군을 막으려고 건설한 것들이다. 건설한 넘의 이름을 따와서 '롬멜 벙커'라는 통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다...] 때문에 웨스타시아의 주력인 공군력 투입이 봉쇄됨은 물론이고 공수부대를 사용한 작전도 불가능하다.
112하지만 웨스타시아 아무리 개판난 대일지언정, 무능한 군대는 아니었기 웨스타시아 군에도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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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 문제의 토브룩 회랑은 크고 알흠다운 몬타나 산맥을 끼고있는 지형으로, 깎아지른 절벽 사이사이에 지하 공군기지 열댓개가 포진해있는 악마같은 방공망을 자랑한다.[* 대부분 옛 전쟁 당시 한랜드로 패주하던 독일군이 동쪽으로 쳐들어오던 연합군을 막으려고 건설한 것들이다. 건설한 넘의 이름을 따와서 '롬멜 벙커'라는 통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다...] 때문에 웨스타시아의 주력인 공군력 투입이 봉쇄됨은 물론이고 공수부대를 사용한 작전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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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162. 따라서 토브룩 회랑을 넘어 마베라 서부를 치려면 육상전력으로 쳐야하는데 대부분의 병력이 서부전선 치느라 바쁜건 둘째치고 지형 자체가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라 한랜드군 특유의 기갑웨이브 전술도 쓰기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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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183. 결론적으로 놓고보면 실상 보병침투가 강제되는 지형이다. 하지만 이쪽도 등산이라는 행위 자체가 여간 빡쎈게 아니기에 어마어마한 장병들의 희생을 요한다. 경사지대라 도로도 마을도 거의 없고 수송차량도 굴리기 힘들어 2차대전 시절에 마지막으로 썼던 말을 보급에 써야하는등 밥줄도 개판이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은 사막이라 저지대는 찌는듯한 더위와 갈증에 시달리며 고지대는 몬타나 산의 한기가 직격으로 내려와 그냥 움직이는 것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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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20한마디로 토브룩 회랑은 전투는 커녕 등산 전문가도 통과가 힘든 인외마경이었기 때문에 이 은색작전은 입안과 동시에 퇴짜를 맞고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묻혀있었다. 이는 1983년의 웨스타시아군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분명 더 쉬운길이 눈앞에 보이는데 굳이 공군도 전차도 못굴리고 병력만 다 죽어나가는 힘들고 괴악한 길을 왜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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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하지만 1984년의 한랜드군은 좀 상황이 달랐다. 에스타뉴 산맥쪽의 서부전선은 완전히 밀려 본토가 야금야금 먹히는 수준이 됐고 육군 해군 공군 모두 박살이 난데다 경제제재에 의해 나라 자체가 아사당하고 있어 최대한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쟁 전부터 앓고있던 정신질환이 심화되어 '전쟁을 끝낼 한방'에 집착하던 연방대통령에게, 동부전선은 꽤나 솔깃한 카드였다. 일단 시골마을 두개와 소도시만 넘으면 마베라의 후방 중 후방[* 토브룩 회랑은 상술했듯 예로부터 극오지에 속하는 산간지대라 롬멜 벙커 등의 방공 시설을 제외하면 양측 모두 아무런 방어시설도 없는 곳이었다. 특히 롬멜 벙커는 당시 독일군 내부에서도 낭비라는 여론이 대다수였고 마테르 전쟁 이전까진 주류 역사학자들도 추축국의 북랜드 전선 패배의 원인을 롬멜벙커의 인력낭비로 뽑았던 수준이었다. ]이라 기습해서 전쟁 극초기에 기획했던 빠른 기습 & 종전협상 전략을 사용할수 있고, 특히 적은 병력 침투로도 큰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은 전차고 인력이고 다 박살나서 없던 당시 한랜드군에겐 매우 솔깃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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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7=== 민들레 작전 유출 ===
123128>'''한여름에 웨스타시아 군부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전선에 참을성을 잃고는,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고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124129>----
122하지만 1984년의 한랜드군은 좀 상황이 달랐다. 에스타뉴 산맥쪽의 서부전선은 완전히 밀려 본토가 야금야금 먹히는 수준이 됐고 육군 해군 공군 모두 사이좋게 박살이 난데다 경제제재에 의해 나라 자체가 아사당하고 있어 최대한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쟁 전부터 앓고있던 정신질환이 심화되어 '전쟁을 끝낼 한방'에 집착하던 연방대통령에게, 동부전선은 꽤나 솔깃한 카드였다. 일단 시골마을 두개와 소도시만 넘으면 마베라의 후방 중 후방[* 토브룩 회랑은 상술했듯 예로부터 극오지에 속하는 산간지대라 롬멜 벙커 등의 방공 시설을 제외하면 양측 모두 아무런 방어시설도 없는 곳이었다. 특히 롬멜 벙커는 당시 독일군 내부에서도 낭비라는 여론이 대다수였고 마테르 전쟁 이전까진 주류 역사학자들도 추축국의 북랜드 전선 패배의 원인을 롬멜벙커의 인력낭비로 뽑았던 수준이었다. ]이라 기습해서 전쟁 극초기에 기획했던 빠른 기습 & 종전협상 전략을 사용할수 있고, 특히 적은 병력 침투로도 큰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은 전차고 인력이고 다 박살나서 없던 당시 한랜드군에겐 매우 솔깃한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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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그렇게 1984년 1월 1일, 새해를 맞음과 동시에 앨빈 C. 요크 련방대통령은 은색작 계획을 재가했고, 최전선에 학도병을 갈아넣어 시간을 버는 동시에 토브룩 공격에 대한 대대적인 밑작업을 시작했다.
120130==== 칼펜슈타인 공중전, 루프트바페의 괴멸 ====
121==== 토브룩의 참화 ====
122131=== 민들레 작전 유출 ===
123>'''한여름에 웨스타시아 군부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전에 참을성을 잃고는,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고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132>'''그해 1월에 웨스타시아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전에 참을성을 잃고는,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고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124133>----
125134>존 키건, <마테르 전쟁사>.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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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66>
158167>루이나는 이에 다음과 같은 5개 항의 경고를 즉시 발효하며,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음을 명확히 밝힌다.
159168>
160>1. 웨스타시아는 로벤자운 작전의 존재를 전면 시인하고, 관련 문서·전파명령·핵무기 운용계획의 완전한 폐기를 국제사회 앞에서 약속해야 한다.
169>1. 웨스타시아는 민들레 작전의 존재를 전면 시인하고, 관련 문서·전파명령·핵무기 운용계획의 완전한 폐기를 국제사회 앞에서 약속해야 한다.
161170>
162171>2. 마베라 주변 해역과 국경지대의 핵탄두 및 운반 수단은 전면적으로 해체되어야 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긴급 사찰단을 무조건 수용할 것을 명한다. 웨스타시아가 이를 거부할 시, 핵비확산조약(NPT) 탈퇴국으로 간주할 것이다.
163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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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83루이나 외교부의 2차 경고문은 단순한 외교적 항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 없는 선전포고였다. 이 성명은 외교 언어의 형식을 빌렸을 뿐, 그 본질은 철저하게 군사적 억지와 국제적 고립 조치를 선언하는 일방적 경고문이자, 웨스타시아의 파시즘적 핵무장 전략을 문명에 대한 반역행위로 규정한 도덕적 기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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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성명은 공개 직후 루이나 국영방송, 국제통신사, 외교 전문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었고, 전 세계 각국의 외무부에 동시에 송달되었다. 무엇보다 주목받은 대목은 5항에 명시된 '''‘해상봉쇄 조치(seaborne interdiction)’'''였다. 이는 루이나가 그간 신중하게 아껴두던 선제적 통상봉쇄 카드를 꺼낸 것이며, 평시 외교에서 보기 드문 경제적·군사적 강압 조치였다. 루이나 국방부는 이에 따라 제2,3함대를 각각웨스타시아 해역과 유고랜드 해역에 전방 배치하고, 웨스타시아 선박 식별 매뉴얼과 차단 전술 지침을 전군에 하달했다. 곧이어 루이나 해군은 '''"[[그레이 라인 작전]](Operation Grey Line)"'''이라 명명된 봉쇄 임무를 개시한다.
185성명은 공개 직후 루이나 국영방송, 국제통신사, 외교 전문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었고, 전 세계 각국의 외무부에 동시에 송달되었다. 무엇보다 주목받은 대목은 5항에 명시된 '''‘해상봉쇄 조치(seaborne interdiction)’'''였다. 이는 루이나가 그간 신중하게 아껴두던 선제적 통상봉쇄 카드를 꺼낸 것이며, 평시 외교에서 보기 드문 경제적·군사적 강압 조치였다. 루이나 국방부는 이에 따라 제2,3함대를 각각 웨스타시아 해역과 유고랜드 해역에 전방 배치하고, 웨스타시아 선박 식별 매뉴얼과 차단 전술 지침을 전군에 하달했다. 곧이어 루이나 해군은 '''"[[그레이 라인 작전]](Operation Grey Line)"'''이라 명명된 봉쇄 임무를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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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87성명문의 어조 또한 전례 없이 강경했다. “우리는 더 이상 역사를 후회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문장은, 루이나의 외교 언어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 명백한 무력 사용의 암시였다. 실제로 외교가에서는 이 발언을 두고, “루이나가 웨스타시아의 핵 위협을 자국 영토에 대한 위협과 동일시하며, 사실상 핵 억지 체계 내의 적성국으로 공식 지정했다는 의미로 본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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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89또한 루이나는 이 성명을 통해 웨스타시아의 행위를 단순한 외교적 실책이나 군사적 오판이 아닌, 국가의 정체성 자체가 파시즘과 핵전략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고발하는 선언적 행위로 승화시켰다. 로벤자운 작전이 단순히 실무 수준의 군사 옵션이 아니라, 웨스타시아 집권층의 이념과 전략의 총합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루이나는 이를 도덕적 전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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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91성명 발표 직후, 플로렌시아·북산·빌베른·동사랜드·사비에트 등지에서 루이나의 대응을 지지하는 공동 성명이 이어졌고, 일부 국가는 웨스타시아 외교관의 추방 절차에 착수했다. 국제 언론은 루이나의 강경 노선을 “전쟁을 막기 위한, 가장 날카로운 외교”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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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93=== 일시적 휴전 ===
1841941984년 5월 중순, 루이나 외교부의 2차 경고와 더불어 해상봉쇄 조치가 개시되면서 웨스타시아는 외교·군사·경제의 세 갈래에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플로렌시아는 자국 내 웨스타시아 자산을 동결했고, 사비에트는 전략군을 랜드해 북부 방향으로 이동시켰으며, 사흘 만에 총 17개국이 웨스타시아 외교관을 추방하거나 대사관을 축소했다. 루이나는 ‘그레이 라인 작전(Operation Grey Line)’을 통해 서부 해상 교통로를 전면 차단했고, 랜드해 서부 인근 해역에서 웨스타시아 국적 선박 6척이 항로 변경을 강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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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96국제여론은 폭발했다. 유엔 긴급 안보리 회의에서 루이나 외교대표단은 로벤자운 작전의 전문 일부를 공개하며, “이 작전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국가 학살을 위한 준비였고, 이는 단지 하나의 계획서가 아니라 한 국가가 체계적으로 구축한 파멸의 기술서였다”고 규탄했다. 국제신문들은 “죽음을 위한 지도”, “트리넬을 지우려 한 자들” 같은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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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이러한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웨스타시아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균열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5월 18일, 웨스타시아 공군 전략사령부 내부에서 익명의 고위 간부가 로벤자운 작전의 실행계획 일부를 국제 군사감시기구(IMOV)에 넘긴 사실이 확인되었고, 해당 인사는 플로렌시아에 망명 요청을 제출했다. 그는 작전이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특정 날짜에 정해진 타격 명령이 포함된 실행 전야 단계였다”고 증언했으며, 이 폭로는 국제사회의 경악을 넘어 웨스타시아 내부의 결속 붕괴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198이러한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웨스타시아 내부에서도 이례적인 균열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5월 18일, 웨스타시아 공군 전략사령부 내부에서 익명의 고위 간부가 민들레 작전의 실행계획 일부를 국제 군사감시기구(IMOV)에 넘긴 사실이 확인되었고, 해당 인사는 플로렌시아에 망명 요청을 제출했다. 그는 작전이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특정 날짜에 정해진 타격 명령이 포함된 실행 전야 단계였다”고 증언했으며, 이 폭로는 국제사회의 경악을 넘어 웨스타시아 내부의 결속 붕괴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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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0여론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웨스타시아 정부 내부의 ‘전술 유연성 확보론자’들과 ‘강경 집행파’ 간의 격렬한 충돌이 비공식 회의록을 통해 외부로 새어나왔다. 최고지도부는 결국 정치적 보존을 택했다. 전면전이 아니라 실패한 도박으로부터의 후퇴, 그것이 그들이 선택한 유일한 출구였다. 1984년 5월 24일 오전 11시, 웨스타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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